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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Review]

깨어나지 않았으면... 연극 낮잠


누구나 첫사랑의 기억을 가지고 살아간다.
가을동화의 준서와 은서처럼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던가..
나처럼 아무도 몰래 바라보기만 하며 짝사랑하던지..

가뜩이나 기억력 떨어지는 내게는
첫사랑의 그녀의 이름도 얼굴도 가물가물하고
초등학교 다닐때 그 친구가 첫사랑인지 중학교때 학원 같은 반 친구인지
아니면 새내기때 그 친구인지.. 진짜로 좋아하기는 했는지..
너무도 외로워서 그렇게 믿고 싶은건지.. 수 많은 의문이 드는 것이 나의 첫사랑의 현실이다. ^^;


주인공 영진은 삶을 마무리 하러 고향으로 내려오고 요양원에서 친구 동필과 무료한 일상을 지낸다.
하는 일이라곤 밥 먹고 잠자고 친구와의 농담 따먹기가 전부인 생활이다.
여느 날처럼 영진은 자신만의 공간에서 낮잠을 청하는데 갑작스런 불청객에 낮잠을 깬다.
그런데 이게 누구인가! 고교시절 첫눈에 빠졌던 첫사랑 이선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녀는 치매가 있어 영진의 존재를 잊은 상태이고
그 시절 바보처럼 마음을 숨겼던 소년 영진이 나타나 그녀를 잡으라고 용기를 준다.
떨리는 마음으로 조금씩 그녀에게 다가가는 영진..
친구와 여성 취향이 비슷하면 피곤하다고 했던가..
하필 동필도 이선이 자신의 첫사랑이라며 훼방을 놓는데..
과연 영진은 이선과 마지막 사랑을 불 태울 수 있을까?


영화감독들이 만드는 연극이라는 테마로 '감독, 무대로 오다' 시리즈 2탄이다.
이번엔 허진호 감독이 맡아서 그의 장기인 첫사랑의 설레임을 무대로 보여줬다.
원작은 제 32회 이상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한 박인규의 단편 소설 '낮잠'이다.
문학소년도 책을 많이 보는 편이 아닌 내가 어쩌다 예전에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산 적이 있었는데
이상문학상 수상작이라고 하니 왠지 모르게 애착이 갔다. ㅋㅋ
무대는 1탄 보다 단촐했다.
요양원과 고교 시절의 회상이 전부이기에 그렇지만
비 오는 오솔길을 그녀와 함께 걷던 무대는 내 마음도 그곳에 가 있는듯 아련한 느낌을 전해줬다.

주인공 영진 역을 맡은 이영하씨는 워낙 텔레비전으로 많이 뵈던 탤렌트이고
한 시대를 풍미했던 꽃미남이라 '과연 저 인물을 다른 여자들이 그냥 놔뒀겠는가'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조금은 소심한 이기적인(?) 영진 역을 보여주셨다.
김창완씨나 오광록씨는 워낙 진중한 이미지라
나이 먹어 예민해지고 철 없는 영진을 어떻게 연기하셨을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


(이영하씨와의 기념촬영. 팔짱은 왜 꼈을까 ^^;)

소년 영진 역으로는 이주승군이 수고했다.
포스터나 홍보로는 슈퍼주니어의 김기범군이 나오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김기범군이 나오지 않는 공연이었기에..
내가 볼 수 있었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이기에 아쉬움을 달랠 수 밖에 없었다.
(공연 표를 양도해 주신 끌량의 '아이고배야'님께 고마움을 표합니다. *^^*)
결과적으로 모르는 얼굴이기에 연극에 집중할 수 있었던 거 같다.
김기범군이 나왔으면 팬들로 가득 찼을텐데..
그 팬들이 나올때마다 소리 지르면.. 나도 같이 환호할 것이 뻔 했기에..ㅋㅋ

이선 역은 이항나라는 분이 맡으셨는데 상대 배역에 비해 많이 젊고 이쁘신 분이 맡아
'균형이 맞지 않는가'라는 생각을 들었는데..
뒤늦게 관련 인터뷰(인터뷰 보기)를 찾아보니
감독님은 표면적인 모습보다는 그 안에 담긴 정서를 표현하고 싶어
나이보다는 곱게 늙은 예쁘신 분들로 캐스팅 했다고 한다.
의도는 다르겠지만 나 같아도 예쁜 배우들 쓰지 ㅋㅋ

소녀 이선 역은 신인 이세나양이 맡았다.
내 레이다망에 아직 걸리지 않았던 신인이고 살짝 도도하게 생긴 탓에 극에 집중할 수 있을까 했는데.. 사실 첫사랑의 이미지로는 박하선씨가 딱인거 같았고..
허나 그날 처음 본 이세나양은 너무도 예뻐서 넉 놓고 극에 몰입했다.
백암 아트홀은 네번째줄까지는 평지라 앞사람 때문에 보기 힘들었지만
그녀 얼굴 조금 더 자세히 보려고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 바라봤다. ^^;
그녀의 이름 이!세!나!
기억하리라!!
다른 기억력은 많이 떨어져도 여자 연예인이나 여성들 이름은 내가 놀랄 정도로 잘 기억하기에
다른 무대나 텔레비전에서 보더라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게 기억하리라~~~


우연히라도 길에서 앞에서 말했던 첫사랑이라고 믿고 싶은 그녀들을 보고 기억할 수 있을까?
알아보더라도 용기 내어 인사를 건낼 수 있을까?
내가 알아본들 그녀들은 나의 존재를 기억이나 할 수 있을까??

다가가지도.. 다가오기도 뭣한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된 우리들..
깨어나기도 싫고 깨어나지도 않았으면 하는 달콤한 낮잠은 소심했던 나의 첫사랑 같다.